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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출판

무라카미 하루키 - 슬픈 외국어

07/12/27 21:49(년/월/일 시:분)


어학연수를 갔다온지 얼마 안 되는 탓에, 서점에서 제목만 언뜻 보고 솔깃해서 사버렸다. 완전 공감 ㅋㅋ 하면서 봤는데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2년 반을 살면서, 일본인으로서 미국에서 겪고 생각한 것들을 쓴 수필집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흔하디 흔한 외국 여행긴데, 그러면서도 하루키 답게 마치 칼로 날카롭게 자르듯 정확하고 공정하게 글을 쓰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자면, 보통 외국 여행기 하면 외국이 좋다 나쁘다, 이런 가치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잖아. 그런 걸 하루키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냉정하게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1년 사이에 미국인의 대일 감정이 갑자기 나빠져 (최근 한 두달은 그래도 좀 낫지만) 일본인에게서 "미국에서 지내기 힘들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중략) 나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정말 곤란해진다. 일본에서든 미국에서든 생활의 기본적인 질은 그다지 차이가 없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중략)

미국에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변변찮은 녀석들이 있다. 그리고 화가 나는 일도 일어난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도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오해를 하거나 불안한 적도 있다. 잘난 척 하며 뻐기는 사람도 있고, 완고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도 있다. 남을 끌어내리는 데 급급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와 비슷한 일들은 일본에서도 비슷한 비율과 빈도로 있었다. 일본어로 얘기할 때도 말이 통하지 않아 화가 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일본에도 변변치 않은 녀석들이 꽤 있다. 100명의 일본인과 미국인을 무작위로 추출해서 자세히 조사해 보면, 변변치 않은 사람, 잘난 척하는 사람, 남의 험담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그래프에서든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친절한 사람이나 재미있는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도 역시 똑같을 것이다. (중략)

인생을 살아가면서 (술집 주인, 소설가로서의 차별을) 몇 번 경험하다보면 "역시 일본이 좋아"라든가, "역시 미국이 좋아"라는 양자 택일적인 견해는, 점차 희박해져 갈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조금 더 젊었더라면,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로 젊지도 않고 좀더 실질적인, 회의적인 견해를 갖도록 훈련되고 말았다.

프린스턴 - 그 미국의 아름다운 지성의 고향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중에서

와 정말 글 잘 쓴다.

이 외에도 "미국의 대학 사회와 계급적 속물 근성", "부강한 나라의 불안한 그늘", "프린스턴 대학과 UC 버클리가 상징하는 것", "학력과 지위가 뭐길래" 같은 미국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도, 두리뭉실하게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겪은 구체적인 사례로부터 귀납적으로 차근차근 납득할만큼씩 발전을 시켜 나가는 거야.

이거 완전 공대식 글쓰기잖아.


슬픈 외국어 - 그러나 '슬픈'이라고 해도 그것은 외국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거나, 외국어가 잘되지 않아 슬프다는 건 아니다. 물론 약간은 그런 점도 있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슨 운명 때문인지 나에게 있어 우리말처럼 설명의 필요 없이 스스로 명백한 성격의 자명성을 갖지 않는 언어에 이렇게 둘러싸여 있다는 상황 자체가 일종의 슬픔에 가까운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쩐지 말을 빙빙 돌리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된다.

내가 자주 외국에 나가 산 까닭은, 중에서

정말 그래. 나도 한국에서 영어회화만 6개월을 하고 갔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문제는 크게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느꼈던 것이, 말이 통하는 문제를 떠나서, 단순히 모국어가 아닌 상황 만으로도 슬픈 것 같아.


말할 필요도 없이 한동안 일본에서 지내면 이 자명성은 내 속으로 다시 조금씩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것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그것은 자명성이라는 것은 영구 불변의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에 대한 기억이다.

어디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이방인이고, 우리가 언젠가 그 자명하지 못한 영역에서 무언의 자명성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받지 않을가, 하는 약간의 으스스한 회의의 감각이다.

내가 자주 외국에 나가 산 까닭은, 중에서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이,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상식의 것들이 의외로 별 것도 아니었을때. 그게 한국같은 특정한 공간이나 상황에서만 통하는 것이고, 또 같은 미국이라도 캘리포니아 다르고 뉴욕 다르고.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세상에 선험적인 것이 얼마나 되나 하는 회의가 든다.

언어가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상식의 범위 내에서 빈칸을 채워나가는 것이라면(비트겐슈타인, 언어게임이론), 외국인으로서 그 "상식의 범위"를 맞추기가, 어느 정도는 완전히 불가능한 부분도 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남에게는 전혀 아닐수도 있다.

그게 심지어는 외국어가 아니더라도 아주 다른 얘기가 아니다. 나는 언제고 내가 믿는 것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나는 항상 두렵고 슬프다.


결론은, 이 책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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