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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출판

레디 플레이어 원 - VR 게임 묘사가 훌륭했지만 아쉽기도 했던 SF소설

16/03/26 04:15(년/월/일 시:분)

오큘러스에서 신입사원들에게 이 소설을 읽게 한다고 해서 혹해서 봤다. 책으로 읽기엔 가만히 앉아서 느긋하게 읽을 시간도 없고, 막상 앉아서 읽으려니 좀이 쑤셔서, 출퇴근시간에 오디오북으로 틈틈이 들으니 들을만 했다.



http://www.audible.com/pd/Sci-Fi-Fantasy/Ready-Player-One-Audiobook/B005FRGT44
Audible - Ready Player One

영어 오디오북은 스티브 잡스 전기,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 14)에 이어 이번이 3번째였는데, 이번 것이 지금까지 들었던 것들 중에서 가장 쉬웠다. 아무래도 가상 현실 게임 소설이라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많아서이기도 했고, 단어나 표현 수준도 가장 쉬운 편이었다. 앞의 2개가 저널리스트가 쓴 논픽션이었다면, 이번 것은 소설가가 쓴 픽션이라 재미가 있을 요소가 더 많기도 했고. 읽어주는 성우도 게임스럽게 잔뜩 과장해서 읽어주니 귀에 쏙쏙 꽂히기도 했고. 진작에 쉬운 것부터 들을껄...

사실 영어로 들은 이유는, 한국에 아직 번역이 안 된 줄 알아서였다. 근데 찾아보니 한국어 번역판도 나와 있었다. 장르 소설이지만 어째서인지 IT 실무 영어 책을 많이 번역하는 에이콘출판에서 번역을 했다. 나처럼 오큘리스에 혹해서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물론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서, 듣던 영어 오디오북을 마저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영어공부도 할 겸 해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993750
레디 플레이어 원 - 2044년 가상현실 오아시스 게임에 숨겨진 세 가지 열쇠를 찾아서


소설을 다 본 소감.

- 오큘러스에서 추천할 만큼, VR장비를 이용한 온라인 게임 묘사가 매우 훌륭했다. 때론 전체적인 소설의 흐름을 해칠만큼 게임의 세부 묘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정도였다.

- 주인공인 10대 백인 하류층 남자가 현실세계에 대해 투정을 늘어놓는 독백이나, 그로인해 가상현실 게임에 완전히 빠져드는 부분은 부분이 매우 좋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사면서 이런 반사회적인 게 좋았다고 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찐따에 친구도 없는데, 게임에만 들어가면 네임드 게이머다. 이런 현실과 가상의 격차, 이것이 낳는 앤티-소셜한 캐릭터. 이것이 이 소설의 백미다.

http://collider.com/steven-spielberg-ready-player-one-movie-details/
Spielberg is more fascinated by the anti-social component than the 80s ephemera that litters Cline’s book.

- 반면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의식은 형편없었다. 특히 결말 부분은 옛날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생각날 정도로 흐지부지에 관습적으로 끝내버렸다. 어쩌면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도 생각났고, 한편으로는 다빈치 코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팩션 소설도 생각났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 설정을 지탱할 힘이 부족해서 막판으로 갈수록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와장창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긴 내가 했던 많은 초창기 RPG 게임들, 특히 자유도가 없이 정해진 스토리대로 흘러가는 게임들은 거의 대부분 뒤로 갈수록 무척 지루해지기 마련이었다. 세부적인 감정 묘사가 점점 줄어들고, 캐릭터들이 그런 결정을 할만한 충분한 개연성이 자꾸 줄어든다. 그냥 원래 계획했던대로 흘러가게 하려고 꾸역꾸역 대사와 설정을 입력할 뿐이다. 이래서야 재미없는 게임 공략집이랑 뭐가 다른가.

물론 나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매우 재미있게 했고,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다빈치 코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즐겁게 봤지만, 초반부는 흥미롭다가 후반부에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공통적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공통적으로 작가 또는 제작자가 설정까지는 잘 잡았는데 그 설정을 끝까지 지탱하는 뒷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도 그래서 참 안타까웠다.

한국 영화에서 비슷한 예로 류승완 감독과 윤종빈 감독을 들 수 있는데, 류승완 감독도 계속 후반부가 엉성하다가 이번 베테랑에서 마침내 후반부까지 재미있게 만들어서 매우 흐뭇했다. 포텐 터졌다 싶었다. 앞으로 윤종빈 감독도 더욱 영화적 체력을 길러서 류승완 감독처럼 마지막 결말까지 잘 지었으면 좋겠다. 이 소설의 작가인 어니스트 클라인도 마찬가지고,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영화화도 마찬가지로 기대한다.



- 80년대 초창기 게임들과 대중문화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초반부를 장악했는데, 나는 이것이 미국판 응답하라 1988 같아 보였다. 이런 80년대 문화 코드가 철저히 소설의 스타일을 구축하는데만 쓰였지, 정작 소설의 주제나 진행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 향수가 외적인 장치일뿐 내적인 장치가 아니다. 주인공도 2044년의 10대로서, 자기는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시대에 대한 동경일 뿐이다. 지금 이 암울한 시대와 달리, 예전에 한번은 풍요로웠던 시대가 있었다. 나는 그런 역사적 자료를 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해진다. 이런 과거 호황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80-90년대 대중문화의 유행과 맞아 떨어진다.

물론 위의 기사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밝혔듯이, 나처럼 80년대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스타일로서 즐겁게 소화할 수 있겠지만, 정작 이런 80년대 정서가 소설에 그다지 녹아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다른 이의 감정에 무심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geek한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런 감성의 부족이 매우 안타까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공전의 히트 소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에도 마찬가지의 70-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대한 향수와, 그 엄청났던 시대가 거품처럼 사라져버린 상실감, 공허함에 대한 정서가 녹아 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은 물론 젊은 세대에까지 그 가슴이 텅 빈 느낌이 절절하게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심지어는 응답하라 1994, 1988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우리가 한 시절을 살았던 그 호황기 시대에 대해 추억하면서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흘려보내고, 지금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서 현재를 다시 추스려 나가자는 톤으로 끝냈다. 물론 작위적인 결말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방향성만큼은 괜찮았다.



- 그래서 이 소설을 추천하는가 묻는다면, 그래도 읽을만 하다고 답하겠다. 특히 초반부의 주인공의 장황한 독백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자기 도취적인 독백을 영화 데드풀처럼 철저하게 1인칭으로 잘 살린다면 영화화에도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다만 VR 게임 묘사가 거의 게임 매뉴얼 식으로 장황하게 펼쳐지는 중반부를 지나서 후반부에 다다르면 급격한 지루함을 느낄텐데, 결말이 궁금하지 않다면 그 쯤에서 그만 봐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중반까지 보면 웬만큼 게임을 해보거나 소설을 봐온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끝날지 뻔히 보인다.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게 끝나니까 안심해도 좋다.

- 개인적으로 또 다른 불만이라면, 여주인공과 일본 캐릭터의 홀대함이다. 백인들의 대중문화에서 여자, 흑인, 아시아계의 비중이 낮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이 소설도 그런 연장선 상에 있다. 큰 고민없이 적당히 이런 캐릭터가 필요하겠다 배치하고, 감정선이나 동기부여, 행동의 당위성 등에 대해 거의 배려하질 않는다.

나도 옛날엔 이런걸 별 생각없이 봤지만, 최근 트위터를 시작으로 과격하게 전파되는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의 계몽을 받았는지, 이젠 이런게 인종 차별로 느껴진다. 어차피 소설의 성격 자체가 10대 백인 남자 주인공의 1인칭 모노드라마에 가까운지라 나머지 캐릭터들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막 쓴 것 같다.

이걸 보니 영화 분노의 질주(Fast & Furious) 7 이 생각났다. 일본인 캐릭터는 인기가 없어서인지 영화 시작하자마자 죽은 것으로 짧게 쳐내는 반면, 실제로 죽었던 백인 캐릭터는 영화 후반부에 상당한 비중을 주어 신중하게 안녕을 고한다. 물론 이 결말이 대단히 훌륭했지만, 일본 캐릭터를 생각하면 (물론 배우가 실제로 죽진 않았지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영화에서 여자의 비중이 얼마나 낮은가 평가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벡델 테스트(Bechdel test)가 있다. 이 테스트는 딱 세가지를 보는데, 다음과 같다.

1. 적어도 2명의 여자가 나온다.
2. 그 여자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데,
3. 그 대화가 남자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상당히 단순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3가지를 만족하는 영화가 의외로 반도 안 된다. 그만큼 여자를 얼마나 수동적으로 활용하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도 당연히 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http://bechdeltest.com/
Bechdel Test Movie List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지만, 남자 감독이 풀어내는 여자 캐릭터는 이상하게 인형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진짜 현실의 여자는 저렇지 않다. 뭔가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여자 캐릭터를 도구로 활용하는 느낌이 든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 캐릭터도 초창기에는 상당히 도구적이었는데,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현실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특히 가장 최근작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제목이 너무 길까봐 띄어쓰기를 안했다고 한다) 에서는 아내도 감탄할 정도로 여자에 대한 세밀한 표현을 보여줬다. 그러니까 남자 감독들의 여자 몰이해는 관심 부족, 실력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비판을 듣고 자꾸 고민을 하면, 워낙 감수성이 뛰어나신 분들이라 여자보다도 더 여자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박찬욱 감독의 신작도 아가씨고, 봉준호 감독의 신작도 옥자로, 모두들 영화에서 여자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최근의 페미니즘 흐름을 모르시는 분들도 아닐테니 과연 그동안 얼마나 여자에 대한 이해가 늘었을지 기대한다.

...얘기가 한참 옆으로 샜는데, 하여튼 백인 작가의 소설에서 여자, 흑인, 아시아계 또는 성소수자 캐릭터를 너무 도구적으로 소모하면 보는 아시아계가 참 기분이 좋지 않다. 다음 소설에서는 적어도 벡델 테스트부터 통과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 참고로 이 소설의 영화는 2018년 3월 개봉 예정인다. 훌륭한 소설이지만 단점도 참 많은지라, 소설 그대로 영화화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부디 적절한 각색으로 원작보다 훨씬 재밌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738852
어니스트 클라인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는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4년을 배경으로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 세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10대 소년이 오아시스의 개발자가 만든 게임에 뛰어 들어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스토리다. 2018년 3월 30일로 개봉일이 연기됐다.

http://www.xacdo.net/tt/rserver.php?mode=tb&sl=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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