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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플래시가 잘 안될 줄 어떻게 알았을까?

12/01/08 01:41(년/월/일 시:분)

최근 어도비는 플래시를 더이상 개발하지 않고 에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심지어는 MS조차도 실버라이트를 버릴 것 같다.

애초에 플래시나 실버라이트나, 웹의 발전 과정에서 잠시 틈새시장을 노렸던 임시방편의 기술들이었다. 웹이 성숙하면 언젠가는 없어지고 말 것들이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에 플래시를 빼면서, 이 흐름을 가속화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빠르게 시장에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기술자의 관점에서 플래시가 임시방편의 기술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도 그랬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그도 기술자이긴 하지만, SW 기술자라기보다는 HW 기술자다. 플래시같은 SW 기술을 잘 이해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플래시가 잘 안될 줄 알았을까?

나는 '직관'으로 알았다고 본다. 플래시를 돌려보니 너무 무겁고, 버벅대고, 느리고, 배터리를 많이 먹는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려고 해도 잘 안됐다. 혹시나 해서 어도비에 협조를 요청했는데, 영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열받아서 뺀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무겁고 느린 걸 어떻게 쓰라는 거야? 그래서 좀 빠르게 해보려니까 협조도 잘 안해? 이런 구닥다리 것을 내 우아한 아이폰에 들여보낼 수 없어! 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다.

사실 여기서 어도비가 애플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면 플래시의 수명이 한 5년은 더 길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블랙베리 플레이북 같은 경우에는, 모바일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플래시가 매우 원활히 돌아간다. 이것은 개발단계부터 어도비가 적극 협조했다고 한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하여튼 플래시의 대체품으로 HTML5가 뜨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HTML5의 문제가 아니라 각 브라우저에서 HTML5의 다양한 새 기능들을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의 문제다. 예전에는 플래시, 실버라이트 등의 ActiveX/Plugin에서 한 레이어를 거쳐서 실행했다면, 이제는 중간단계 없이 바로 브라우저가 태그를 해석해서 실행해야 한다. 중간단계가 없어진 만큼 성능이 높아질 수 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브라우저에 달려있고, 그만큼 브라우저의 부담이 높아진 것이고, 각기 다른 브라우저간의 호환성 문제도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플래시 등의 플러그인에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니, 결국에는 이렇게 표준 마크업 랭귀지로 통일되는 흐름이 필요하긴 했다. 근데 본이 아니게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에 플래시를 빼면서 이런 흐름을 가속화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기술의 발전을 빠르게 한 셈이지만 본인에게는 그런 자각이 없었을 것 같다. 그냥 내가 쓰기에 무겁고 느리고 뻑뻑하고, 어도비가 잘 협조를 안해주니까 열받아서 뺀 거였겠지. 흠.

심지어는 그 후로 맥북에서도 플래시를 뺐는데, 정말 이건 감정적인 대처였다고 생각한다. 근데 재미있게도 플래시를 뻈더니 맥북의 사용시간이 1시간이나 늘어났다고 한다... 하긴 플래시가 많이 비효율적이긴 했다.

이렇게 스티브 잡스의 감정적인 대처에 정신이 번쩍 든 어도비는 플래시 10,11버전 들어서 대규모 업데이트를 강행하며 내부 구조 개선에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새로운 API를 사용하면 좋아졌으나 구 API들을 버릴 수가 없어서, 그놈의 레거시 지원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 결국 플래시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새로운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HTML5 기술을 지원하는 브라우저가 아직 한정적이고, 브라우저의 성능도 충분히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플래시가 있어야 할 자리가 공백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은 웹 개발자들이 호환성 공백을 잘 메꿔야 하는데, 이것이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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