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2/02/07 07:14(년/월/일 시:분)
또 이사간다. 혼자서 잔뜩 짐을 꾸렸다. 정리하고 정리해도 짐이 한 가득이라 내 작은 차에 다 실을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소중한 것들을 잔뜩 버리고, 친구 집에 잘 안 쓰는 큰 짐들을 맡긴 후, 고작 10개 남짓한 검은 가방에 내 모든 짐을 꾸려버렸다.
텅 빈 원룸은 마침 차갑고 쓸쓸했다.
이게 몇 번 째 이사인가. 이젠 슬슬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처음 들었을 때는 2007년 미국 어학연수 때였다. 6개월간 행복했던 캘리포니아 얼바인에서 뉴욕으로 떠나던 날, 나는 샘소나이트 캐리어에 나의 모든 짐을 집어넣어야 했다. 아무리 물건을 버리고 버려도 그 커다란 캐리어 가방이 닫히지가 않았다. 고작 6개월을 살았을 뿐인데, 그 사이에 참 나는 많은 것들을 사서 가졌더라. 그렇게 내가 덧없이 사 가졌던 많은 것들을 나는 덧없이 버려야만 했다.
일단 책은 무조건 다 버렸다. 옷도 최소한만 남기고 다 버렸다. 친구도 버리고 추억도 버리고, 나는 홀홀단신으로 샘소나이트 캐리어와 백팩만 가지고 또다시 전혀 연고도 없는 뉴욕으로 가야만 했다.
그 후로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2009년 입사해서 처음 아산 탕정으로 배치받았을 때도, 그리고 경북 구미로 전배할 때도, 2010년 경기도 수원으로 전배할 때도, 2011년 대전으로 파견갈 때도, 2012년 이제 기흥으로 이사갈 때도, 나는 항상 많은 것을 버렸다. 그리고 항상 혼자였다.
굳이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나 혼자서 다 할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가족의 품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만끽했다. 여기라면 누구도 나를 간섭할 수 없었다. 나는 일부러 외진 곳으로 골라 들어가 꼭꼭 숨어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잔뜩 들뜬 마음으로 짐을 쌀 수가 없었다. 어쩐지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소중한 것들을 버리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이젠 그만 정착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기흥 고매동으로 간다. 고매동은 기흥반도체에 가까우면서도 유난히 외져서 집값이 비교적 싼 편이다. 이번에는 비록 고시원으로 들어가지만, 다음에는 꼭 신혼집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러고 말테다.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텅 빈 원룸에서 잔뜩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pb_5DDswth8
윤상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