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06/09/20 01:19(년/월/일 시:분)
결국 3 까지 나왔다. ㅠㅠ
3 까지 나왔다는 소리는, 1에서 시작한 과제를 아직도 끝내지 못했다는 얘기. 데드라인이 조금만 짧았어도 이렇진 않았을텐데.
키젠에 들어있는건 단순한 조크 프로그램이었다. 컴퓨터가 부팅이 안 된건 CPU 과열 때문이었다. 가만 보니까 CPU 팬 전원선이 빠져있더라. 아마 하드디스크를 갈아낄때 잘못 건드렸나보다. 애슬론XP 1800+ 주제에 그동안 잘도 버텼네.
다행히도 윈도우즈XP로 들어가졌고, 잘 되는걸 확인하고 뒤돌아서는 찰나.. 갑자기 스피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윈도우를 종료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마도 문근영 버전에 일부러 포함한 목소리였나보다. 근데 깜깜한 밤에 혼자 있는데 왠 낭랑한 여자 목소리가 갑자기 나오니까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심장이 쿵쾅쿵쾅.
하여튼 페도라로 돌아가서 소켓 프로그래밍을 해보려고 하는데.. 평소 하던대로 텍스트 편집기를 열어서 C코드를 수정하려 했으나.. 어라라? 키가 안 먹는다! 아무리 키보드를 두들기고 마우스를 움직여도 전혀 수정이 안 되는거야! 왜 이래!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건 키보드 설정의 문제 때문이었다. 입력 로케일을 한글 두벌식으로 바꿔주니까 되더만.
어쨌든 그 당시만 해도 방법을 몰랐으니 vi를 쓸수밖에. 간만에 커맨드 환경으로 하려니까 불편한 건 둘째. 그래도 쉘이 좋아서 그런지 구문강조는 해주네. 그래서 잘 코딩하고 컴파일해서 실행하니까..
bind() 명령을 실행할 수 없다고 나오네.
아니 bind() 명령을 실행하는데 무슨 권한이 필요해? 하여튼 일단은 su로 들어가서 실행했더니 잘 됐다. 그런데 두번째 문제. su를 했더니 vi에서 구문강조 기능이 꺼지는거야. 와 답답하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검은색 바탕과 흰색 글자 뿐.
하여튼 하다하다 지쳐서, 학교에서 나머지를 하려고 텔넷을 돌리려고 했는데. 어라 이럴수가. 텔넷이 막혀 있는거야! 네이버에 물어보니 페도라 코어5에는 selinux라고 보안기능이 강화되서, telnet, ftp 등 보안이 허술한 건 기본적으로 막고, 대신 ssh, sftp를 쓰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ssh를 쓸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럴 바에는 selinux를 없애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요리 해보고 조리 해봤지만.. 어느새 날은 밝아오고, ssh도 selinux도 못 한채로 학교에 가야 했다.
한편 학교에서는 SW 모델링 수업에서 팀 프로젝트를 VS .NET 으로 하고 있었다. (다이어그램을 자동으로 생성해주거든. 모델링에 편함) 그런데 서로 폴더 공유를 해서 코딩을 하려고 했는데 어라라. 실습실에 .NET 2003이 깔린 컴퓨터가 얼마 없는 것이다. 아마도 라이센스 문제 때문에 일부만 깐 거겠지. 그래서 여러 자리를 옮겨 봤지만, 꼭 어떻게 된게 내가 앉은 곳에 .NET 2003이 있으면 그쪽에는 없고, 그쪽에 있으면 내쪽이 없고. 이런 술래잡기 같은 꼴을 반복하던 끝에, 다음 수업시간이 되어서 나는 그만 가봐야 했다. -_-
젠장 젠장! 그래도 집에 원격 데스크탑 설정을 해놨으니까 윈도우는 원격으로 가능하겠지? 싶어서 학교에서 접속을 해봤는데 자꾸 안 먹는거야. 집에 와보니 컴퓨터 꺼놓고 갔더라. 허탈.
한편 어제는 보강 때문에 9시에 끝났다. 9시에 가서 9시에 오는, 이것이 컴공의 로망.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배탈이 나버렸다. 이틀째 죽만 먹는 중. 본죽도 먹고, 햇반 죽도 먹고. 보통은 이러면 체중이 빠지는데, 나는 왜 안 빠지지? 죽도 많이 먹으면 살찌나. (많이 먹긴 했지만;;)
새삼,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KLDP 10주년 세미나에 구글의 그렉슈타인(
http://code.google.com/)의 똥배가 생각났다. 40대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하루에 5시간만 자며 코딩을 한다는 그의 똥배는, 정말 배 나온 정도 = 코딩실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산 만 했다.
하여간 계속 죽만 먹어서 배고픈 동시에 배가 아픈데 그 상태에서 하루에 8시간씩 전공수업을 들으니까 뭐랄까. 나도 이러다 그렉슈타인처럼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살짝 배를 만져봤다. 오오 물컹하는 나의 인격. 배탈이 나서 축축 쳐지는 와중에도 나의 인격은 여전히 건재했다. 아이 든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