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들 - 스토리
06/09/23 23:41(년/월/일 시:분)
어느날 갑자기 세상에 던져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못생겼다. 생기긴 생겻는데 잘생긴게 아니라 못생겼다. 내가 생기고 싶어서 생긴 것도 아니고, 어차피 생긴걸 다시 생길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못생긴 채로 살아가는 수 밖에 없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나도 좀 잘생겼으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솔직히 잘생긴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이나 그게 자기 의지로 결정된 건 아니다. 다들 마찬가지로 별 이유도 없이 세상에 던져지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라? 나는 잘생겼잖아, 혹은 못생겼잖아 일 뿐이지. 나도 알아 그런 건. 유전자 조합에 의해 랜덤으로 결정됐다는 사실 정도는.
잘생기고 못생긴 차이는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성인 남녀를 기준으로 볼때 사람의 키는 채 두배도 차이나지 않는다. 물론 기네스 북에 오를만한 거인과 소인을 제외하면 말이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보통 사람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채 두배도 차이나지 않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하지만 잘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키가 정확히 똑같은 사람도 하나 없다. 다들 아주 조금씩 미교하게 엇갈린다. 크게 보면 다를 것도 없는데 가만 보면 같을 것도 없다.
그러니까 잘생기고 못생긴 차이는 평소에는 잘 모르는데 막상 중요한 판에 들어가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는 거다. 예를 들어 이 세상에 널린게 남자고 여자지만, 그 중에 사귈 사람을 찾아보면 딱 한 사람 찾기도 왜 그렇게 어려운지. 게다가 연애에 들어가면 잘생기고 못생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외모가 무슨 큰 문제냐고? 내가 언제 외모를 말했나? 잘생기고 못생긴게 외모만 말하는 거냐고. 성격도 잘생기고 능력도 잘생기고 그러는 거지. 못난 성격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어느 정도는 타고난 부분이 있고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잘생긴 사람에게는 잘생긴 사람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못생긴 사람에게는 못생긴 사람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둘은 같은 세상에 살면서 다른 세상을 산다.
이것은 못생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1. 가면 쓰기
못생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한가지는, 가면을 쓰는 거다. 얼굴에는 화장품 또는 성형수술로, 인격에는 페르소나를. 자신의 진짜 모습은 저 먼 깊숙히로 감추고,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는 호감형이고 사교성 좋은 껍데기를 덮어 쓰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오늘 날씨가 좋군요. 하시는 일은 잘 되십니까? 그거 다행이군요. 하하.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면을 얼굴에 덮어쓰고 사람을 대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른 가면을 써주는 것도 필요하다. 형 노릇 할때는 형 가면을, 집에 오면 아들 가면을, 친구들 만날땐 친구 가면을, 애인 만날땐 애인 가면을.
잘생긴 사람은 구태여 가면을 만들 필요가 없다. 가면은 오로지 못생긴 사람을 위한 것이다. 못생긴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계속 필요한 가면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 들어갈때는 입시 가면을, 회사 들어갈때는 입사 가면을, 결혼할때는 남편 가면을, 애 아빠되면 아빠 가면을...
이러다 보면 어느 순간, 가면이 얼굴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면 밑의 얼굴은 통풍이 되지 않아 막 가렵고 염증이 나고 짓무르는데, 이놈의 가면은 너무 오래 쓰고 있었던 탓인지 아무리 기를 쓰고 떼어내려 해도 도통 떨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성대모사를 너무 하다보면 가끔 내 목소리를 잊어버린다. - 개그맨 박세민 -
이걸 좋은 말로 하면 가면이 체화되었다, 너 못생긴 사람이 마침내 잘생긴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지만, 실은 속에서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을 뿐이다. 못생긴 사람은 못생긴 채로 살아야 한다. 그러는 편이 건강에 좋다. 안 그러면 안에서 고름이 터지다 못해 암이 된다.
우리나라가 괜히 암 발병률 및 사망률이 세계 1위인게 아니다. 자살률도 세계 1위래(OECD 가입국 중에서). 암이나 자살이나 어쨌든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지 뭐. 그러니까 결론은 가끔 가면을 벗어줄 때도 필요하다는 거다.
생각해보라. 하리수도 가끔은 남자이고 싶을때가 있을 거다. 아무리 자기가 여자이고 싶어서 여자가 됐고 거기에 만족을 한다 하더라도, 어느날 문득 남자였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남자인 모습을 보일 수도 없다. 아무도 보지 않는 깊은 골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남자였던 모습을 그리워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게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건 비타민 같은 거다. 아주 조금밖에 필요하지 않지만, 그 조금이 결핍되면 병들어버리는 비타민 같은 거다.
그래서 못생긴 사람에게는 도망칠 골방이 필요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에서 잠시나마 가면을 쓰고 가면 밑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하다.
영화 '어글리 우먼'에도 그녀가 가면 밑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은 단 한번도 없다. 영화조차도 그런데 현실은 어떠하랴. 못생긴 사람은 그런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