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6/10/29 06:34(년/월/일 시:분)
나는 강박증이 좀 있다. 좋은 점으로는 굳이 메모를 하지 않아도 까먹지 않는다는 것, 나쁜 점으로는 별 쓸데없는 것까지 다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로 돌아가보자. 나는 천재 소리를 조금 들었다. 예를 들어 다음 시간에 영어단어 시험을 본다고 하면 나는 쉬는시간 5분 동안 100단어를 외운다. 한문을 써오는 숙제가 있다고 하면 쉬는 시간 5분동안 세 페이지를 꽉 채운다. 지금도 무엇을 외워야 하는지만 정확히 안다면, 얼마든지 외울 수 있다.
그러니까 강박증은 정확히 말하면 단기 기억 장애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은 크게 감각 기억→단기 기억→장기 기억 으로 나뉘는데, 보통 사람의 경우 단기 기억에 머무르는 시간이 1분 남짓으로 이후에는 그냥 잊어버린다. 그런데 나는 단기 기억을 뛰어넘고 감각 기억→장기 기억으로 바로 넘겨버릴 수가 있다.
즉 나에게 세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과,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 기억해야겠다 싶으면 머리속에 팍 집어넣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할 필요가 없으면 3-4초 내로 잊어버린다. 나에게는 관심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세계가 너무 극단적으로 갈린다. 적당히가 없는 것이다.
중학교때 왕따를 당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제는 내가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기억은 단편적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정확히 기억하니까. 대체로 내가 이를 악물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만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그러다보니 나는 신경성 장염에 걸려서 계속 고생을 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따라 아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서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불교식 체념을 배웠다. 안 되면 적당히 그만두는 법도 나는 따로 배워야 했다.
그래서 나는 성격이 관대해지기는 했는데, 그만큼 타인에게 무신경해진 것도 사실이다. 내가 가장 충격을 먹은 것은 내 여자친구의 생일을 까먹은 것이었다. 분명히 내가 생일 선물도 사줬는데, 불과 한달도 지나지 않아서 까먹어버렸다. 심지어 여자친구의 나이도 까먹었다. 즉 나는 여자친구도 나와 상관없는 타인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 너무 집착을 해서 고생을 시켰다.
나의 세계는 너무 극단으로 둘로 나뉜다. 그래서 나는 두 세계의 중간자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서 그만 잊어버리고 싶을때, 그것을 쏟아버릴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여기다. 나중에 보고 싶을때는 검색해서 보면 되니까.
나는 잊어버리기 위해 글을 쓴다. 글로 써버리면 머리가 가벼워진다. 강박증의 치료 목적으로 기록을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기억하기 싫은 것들, 집착하기 싫은 것들을 글로 써버리고 나는 홀가분해진다. 그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 그리고 이것들은 나의 해타(가래,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