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고 싶으면 연애소설을 보았고,
섹스를 하고 싶으면 포르노를 보았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만 살아가는 이야기. 지난 5월 유리가면을 보면서 썼던 건데, 어제 다시 유리가면을 보면서 그게 다시 생각났다.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러는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자폐적인 이야기였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더 예전에 이런 것도 생각했던 적이 있다. 유치원에서 그는 진실만을 배웠다. 그러던 그는 어느날 "절대로 건너서는 빨간 신호등에서 무단횡단하는 자신의 유치원 선생을 목격한다". 그가 배운 것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TV에서 진실을 목격한다. TV안에는 진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방송국 카메라맨이 되지만 실은 방송국에도 진실이 없었다. 진실은 브라운관 안에 있었다. 도저히 구조를 알 수 없는 TV안의 전자총에서 빛이 나와서 형광물질에 부딫치기까지, 고작 몇십cm밖에 되지 않는 좁은 브라운관 안에 진실의 나라는 존재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TV 유리를 깨고 브라운관 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좁아서 살 수가 없었다.
그는 진실의 나라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살던 어느날, 그는 놀랍게도 이 지구상에, 그렇게 가까운 곳에 진실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허술한 지도에 의지해 찾아간 곳은 북극이었다. 그 곳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거짓없는 오로지 진실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홀로 진실을 만끽하던 그는 얼어 죽었다.
....라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자폐적인 이야기였는데.
유리가면을 다시 본 탓인지 다시 이 테마가 마음에 들어버렸다. 생각 안에서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 육체를 버리고 영혼으로 살아가는 것. 뇌 안에서 뉴런의 전기신호로만 살아가는 것. 라이프 마스터베이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해답이 아닌, 행복하게 죽어가는 것에 대한 해답.
"세상의 많은 소년 소녀들이 그 책을 보고 무언가를 찾아냈습니다. 삶의 이유를 찾거나 죽음의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살든 죽든 죽었습니다.
행복하게 죽었습니다."
행복하게 살 수 없다면 행복하게 죽고 싶다.
...아니, 진심은 아니고 이런 이야기면 어떻겠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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