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확실히 소음성 난청이다. 뭐 나도 나름대로 뮤지션이다보니 직업병 같은 것인데.. (.....)
소음성 난청이란 소음을 잘 못 듣는 증상을 말한다. 뭐 소음성 난청이라는 멋있는 말이 붙어있다고 해도, 이게 밝혀진지 얼마 되지도 않고 그 원인이나 대책이 뚜렷히 나온게 아니라 믿을만한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찌됬건 그 증상만은 나타나고 있고 그게 나쁘다는 건 확실하다.
소음성 난청은 대체로 두두두두 지지지징 하는 시끄러운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들에게 나타난다. 그런거 다루면 10~20% 정도는 소음성 난청이 생긴다고 하는데, 너무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서 청각세포가 파괴된다고 한다. 그래서 점점 가는 귀가 먹어서 나중에는 사람 말도 잘 못 알아 듣는다고 함.
뭐 이어폰으로 들으면 나쁘다고 하는데 그건 헤드폰으로 들으나 스피커로 들으나 어찌됬건 큰 음량으로 들으면 귀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문제는 '음량의 포만감'에 있다. 일단 크게 들으면 좋게 들리는 것이다. 사실 음악 엔지니어링의 역사를 봐도 "어떻게 하면 더 크게 소리를 채울 것인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겉으로 보기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음량이다. 옛날 것은 작아서 잘 안들리고, 요즘 것은 다들 확실히 크게 들린다.
처음 전자기기로 오디오가 나왔을때 문제가 '충분한 볼륨을 내지 못한다'였다. 아무런 증폭장치 없는 오케스트라의 볼륨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실 나는 최근에야 증폭장치 없는 언플러그드 음악회를 접했고, 앰프 없이도 그정도 볼륨이 나온다는 것에 놀랬다) 그래서 음악 엔지니어들은 어떻게 하면 볼륨을 크게 할 것인가에 골몰해왔고 이제서야 들을만한 음량이 나온 것이다. 사실 비틀즈도 콘서트를 할때 너무 볼륨이 작아서 관중의 괴성을 압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너무 시끄러워서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이 서로 다른 노래를 연주하면서도 틀린지를 한동안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비틀즈는 활동 후반기에는 콘서트를 하지 않고 스튜디오 작업에만 열을 올린다.
뭐 그것도 이제는 옛날 얘기라서, 람스타인의 경우는 콘서트때 너무 큰 볼륨으로 하는 바람에 천장에 먼지가 떨어질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건물 주인이 건물 무너질까봐 중지시키기도 했고. 관객은 너무 소리가 커서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을 정도. 참 세상 좋아졌다.
어찌됬건 음량의 포만감은 대단하다. 마치 큰 그림이 다른거야 어찌됬건 그 앞에 서면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음량이 큰 음악도 일단 들으면 가슴을 진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온갖 이펙터를 이용해서 소리를 크게 하는 것이고, 사실 기타가 자주 사용되는 이유도 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일단 소리가 크면 먹고 들어간다. 같은 음악을 볼륨을 두배로 듣는 것 만으로 감동이 두배가 된다.
그런 이유로 소음성 난청에도 불구하고 자꾸 음악을 크게 듣게 되는 것이다. 너무 소리가 커서 청각세포가 손상되더라도 말이지. 실제로 SES의 바다도 소음성 난청 정도가 아니라 한쪽 귀가 거의 안 들릴 정도라고 한다. 많은 가수들이 콘서트할때 귀에 이어폰 꼽고 노래를 부르는 이유도 잘 안들려서다.
콘서트 무대 위에 보면 모니터 스피커라는 것이 있다. 관중을 위한 스피커가 아니라 자기가 듣기 위한 것인데, 그게 있어도 일단 방향성이 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는 관중석에서 듣는 음량보다 작은 음량이 되기 마련, 게다가 인기가 있어 관중들이 괴성이라도 지르면 자기 목소리조차 제대로 안 들리지. 그런 음악 외적인 소리를 엄청난 음압으로 듣게 되니 소음성 난청이 안 생길 수 있나.
그렇다면 어떻게 청각세포의 손상 없이 음량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을까. 어차피 음량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너무 조용한 곳에서도 청각은 손상된다고 한다. 그러니 적절히 뭐 바람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는 한적한 시골에서, 굳이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뛰어난 해상력으로 각각의 소리를 뚜렷하게 내주는 비싼 음향기기로 듣는 것이 최고겠지.
사실 볼륨을 크게 키우는 이유중 또 하나가, 대부분의 전자 음향기기들은 (특히 휴대용 기기가 그렇지) 볼륨을 크게 키우면 디스토션(음의 찌그러짐)이 일어난다. 이게 참 매력적이다. 나도 요즘에 마스터링이 다 끝난 소스에 일부러 Tube(디스토션의 일종)를 넣는데, 이러면 참 소리가 매력적으로 바뀐다. 즉 음량을 크게 듣는 것은 크게 듣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것. 이런 이유로 크게 듣기도 하지.
나같은 경우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음악을 크게 듣는 건 둘째치고 정말 버스소음 지하철소음 죽이게 시끄럽다. 특히 버스의 우우우웅 하는 저음은 어지간한 락 콘서트의 우퍼 소리를 능가한다. 그나마 지하철, 특히 6,7,8호선은 사람 목소리 주파수 부분을 감쇄시키는 장치를 해놔서 서로 대화는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나머지 저음과 고음 부분의 소음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음악인의, 특히 락 뮤지션의 소음성 난청은 필연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락의 가장 큰 미학은 음량의 포만감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락을 기점으로 작곡에서 사운드로 음악의 관심이 옮겨가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적은 악기로 좀 더 멋있는 소리를 낼 것인가 하는 문제. 그러다보니 볼륨이 커지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소음도 음악에 편입시키게 되었는데, 사실 소음과 음악은 종이 한장 차이일 뿐.
즉 우리 귀의 청각세포는 듣기 싫은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큰 소리라도 그 소리 전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청각세포가 죽지는 않을껄. 물론 금방 지쳐 힘들어하겠지만. 볼륨이 크면 똑같은 소리라도 귀에 유입되는 정보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음악듣기가 2배로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도 락 콘서트에서 앞에 30분 정도는 잘 들을 수 있지만, 그 다음부터는 귀도 먹먹해지고 막 무뎌진채로 그냥 뭔지 알수 없는 큰 소리를 즐겨버리는 것 같다. 즉 볼륨이 너무 커서 그냥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다.
락 뮤지션, 특히 엔지니어들이 하는 얘기가, 락 같은 묵직한 음악을 너무 많이 들으면 귀가 무뎌진다고 한다. 예민한 청각으로 먹고사는 이들이니만큼 귀가 무뎌진다는 것은 정말 치명적인텐데. 그렇다고 큰 볼륨의 매력을 뿌리칠수도 없고. 이것도 직업병이려니 해야 할까.
고딕 메탈의 골수팬이 많은 것도 같은 의미에서 볼 수 있다. 일단 볼륨이 크기 때문에 음악성이야 어쨌든 듣기가 좋은 것이다. 특히 더 건조한, 박박 긁어대는 소리일수록 좋다고 한다. 좀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것, 어떤 의미에서 이건 음악적인 SM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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