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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돈반에 몸을 싣고
처음에는 그냥 무작정 탔다. 아니 탔다기보다 짐처럼 실렸다. 2.5톤 군용트럭, 통칭 두돈반. 문도 없이 창문도 없이, 안전벨트도 없는 짐칸에 말 그대로 짐처럼 실렸다. 자리를 잡을 겨를도 없이, 2년이라는 긴 운행은 이미 출발해버린 후였다.

덜컹덜컹. 투박한 승차감. 두터운 호로 둘러싸여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얼마쯤 왔는지. 아무리 둘러봐도 알 수 없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두돈반 뒤로 보이는, 지나온 길 뿐.

나의 지나온 길. 때론 평탄하다가도 때론 울퉁불퉁하고. 때론 쭉 뻗다가도 때론 구불구불하고.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허술한 받침대에 의지해서 고속으로 달리는 짐칸에서 뒤를 바라보면, 지금까지 내가 힘겹게 달려온 길이 펼쳐진다. 그래도 내가 이만큼 왔구나.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이만큼이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마치 정전처럼 갑자기 끝나버리는 우리의 인생처럼, 이 2년이라는 긴 운행도 언젠가는 틀림없이 끝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처음 왔던 곳에서 상당히 먼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 처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짐처럼 내던져지겠지.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가리고 있는 답답한 호를 찢고 바깥을 훔쳐보는 것도 아니요, 고속으로 달리는 두돈반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아니요, 그저 이 두돈반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 정도겠지. 그때가 되면 이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 흐릿해질 테니.
|hit:2770|200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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