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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예술가의 의무: 뭔가 생각났다면, 세상에 뿌려라

10/05/08 01:14(년/월/일 시:분)

예술가가 이론을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창작론은 매우 위험하다. 자기가 만든 틀에 자기가 갇혀서, 고리타분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부러 창작론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창작을 해오면서, 그래도 이것 정도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해본다.


예술가의 의무에 대해서.



창작을 크게 2단계로 나누자면 다음과 같다:

1. 착상(inspration) : 맨 처음 단계. 어느날 갑자기 뚝 하고 떨어진다. 신의 영역.
2. 구현(implementation) : 착상을 실제로 만질 수 있거나 볼 수 있거나 읽을 수 있거나 들을 수 있거나 느낄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 인간의 영역.

이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창작을 하는데 둘 다 있어야 하지만, 나는 착상이 훨씬 아주 더 많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착상은 순전히 운으로 얻어지는 거지만, 구현은 열심히 오랫동안 꾸준히 엉덩이 무겁게 노력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착상은 비싸고, 구현은 싸다.

아니 왜 운으로 얻는게 더 비싸? 노력으로 얻는게 더 비싸야 하지 않나? 무슨 소리. 노력은 누구나 하면 되지만, 운은 누구나 되진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운은 별개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운이 노력보다 더 비싸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29529
인스피레이션 [inspiration]
주로 예술창작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실. 보통 영감(靈感)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창작의 구체적 동인(動因)에 대해서나, 또 생산되는 예술형상에 대해서도 그것이 어떻게 해서 생성되었는지를 창작자 자신의 체험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형태로 홀연히 생성된다. 유사한 사실은 발명이나 발견 등의 지적 과정에서도 볼 수 있고, 문제해결이 막혀버린 상태에서 돌연히 해결책이 떠오르는 통찰(洞察)의 비약적 전개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체험자 자신에게 설명을 초월한 형태로 생산되는 내용이 그 사람에게 있어 가치가 높은 것일 때 영감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가수를 보자.

유명 기획사에 들어가서 하루에 8시간에서 12시간씩 3~4년간 성실하게 연습하면, 설령 재능이 없더라도 노래를 아주 잘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음색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그냥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보컬 트레이닝은 물론 고통스럽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고통의 세기와 매력적인 음색은 상관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가수의 가창력은 상관이 없다고 본다. 어차피 훈련하면 늘기 때문이다. 발성연습도 하고, 폐활량도 키우고, 기교도 배우고, 지식도 쌓고, 경험도 쌓으면 누구나 잘 훈련된 가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매력적인 가수는 그것과는 별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인데, 나는 그게 우연히 열심히 노력하던 와중에 떨어졌을 뿐이지, 그것이 노력의 결과로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열심히 노력해서 매력적인 음색을 얻은 사람도 있고,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매력적인 음색을 얻은 사람도 있다. 또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매력적이지 않은 음색도 있고, 노력하지 않았고 매력적이지도 않은 음색이 있다.

1. 노력했음. 매력적임. (인순이, 비욘세)
2. 노력안했음. 매력적임. (70~80년대 히피 락가수 대부분)
3. 노력했음. 안매력적임. (김장훈, 싸이)
4. 노력안했음. 안매력적임. (일반인)

이렇게 노력과 매력적 음색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면, 이 둘의 관계가 크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보컬을 뽑을 때 음색만 본다고 했다. 실력이야 연습시키면 늘지만, 음색은 애초에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이승철도 뽑았던 거고. 그래서 이승철이 지금처럼 나이들고도 여전히 미성인 거고.

노력과 상관없이 타고나는 거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것은 불교의 돈오점수와는 반대의 입장이다. 깨달음을 얻을 때

돈오: 갑자기 깨우침. 유레카.
점수: 꾸준히 갈고 닦음. 노력.

돈오를 하려면 점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러려면 뒤에서 성실하게 꾸준히 학문을 갈고 닦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잘 안되냐? 닥치고 노력하셈! 이런 입장이다.

이것은 "1만시간의 법칙"과도 통한다. 아무리 천하의 김연아, 안철수, 스티브 잡스도 정말 오랜시간 노력했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절대 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인데.


나는 이에 대해 반박할 수 있다.

돈오점수, 1만시간의 법칙에서 예로 드는 성공사례는 다분히 아카데믹한 사례들이다. 어느 특정한 룰이 있고, 체계가 있고, 권위가 있고, 무언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높은 울타리 안에 잘 다듬어진 정원에서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에게 권위를 인정받는 성공을 예로 든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확실히 노력이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성기고 거칠고 연약하지만 생기가 넘치는 자유분방한 세계를 예로 들고 싶다. 맨날 술과 마약과 섹스에 찌들어있고, 제대로 교육받은 것도 없고, 인간 자체가 말종이긴 하지만, 그들이 기타를 잡았을 때 뿜어져나오는 거친 에너지는 비록 엉성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때론 그런 에너지들이 모여서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나는 그런 것도 매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기죽지 마라. 지금 못한다고 포기하지 마라. 나는 당신이 어느날 머리속에 갑자기 떠오른 그 착상, 아이디어 자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갑자기 문득
흥얼흥얼, 어 뭔가 노래가 되네? 싶으면 노래하라.
끄적끄적 하다보니, 이것도 그림이 되네? 싶으면 그려라.
타닥타닥 치다보니, 이것도 글이 되네? 싶으면 써라.

나는 이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금 못 불러도, 못 쳐도, 못 그려도, 못 써도 상관없다.
잘못된 생각이어도 상관없다. 틀려도 좋다. 그런 건 상관없다.
당신이 떠올린 그 머리속의 생각 자체가 소중하니까.

물론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무척 오래 걸릴 수 있다.
정말로 3년, 10년씩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또는 평생을 걸려서 죽기 직전에야 겨우 뭔가 나올 수도 있다.
또는 당신이 죽은 다음 100년이 지나서야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아이디어를 완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둘째 문제다. 구현은 둘째 문제다.
굳이 정확히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그건 결국엔 나중에 하면 된다.

완성은 나중에 하고, 일단 그 머리속에 혼자만 알고 있는 그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라! 어떤 형태로건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서 퍼트려라!

이게 창작이지 뭐야.
이것으로 이미 당신은 충분히 예술가다.


If you've got something, broadcas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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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놓고 나니 가수의 예는 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가수의 음색은 '재능'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창작의 비유를 들려면 갑자기 머리속에 떠오른 '멜로디'나 '사운드'를 비유로 사용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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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스암페타민 10/05/08 08:05  덧글 수정/삭제
    재미있는 의견이네요.
    특히 가수를 예로 든 부분에서 많이 공감됩니다.
    누가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안나는데...
    석공이 조각을 만들때
    자신은 그 돌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냈을 뿐이지
    자기가 조각을 만든건 아니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그 사람만의 고유의 유니크한 특질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애초에 가진게 얼마냐에 따라서
    금방 나오는 사람이 있고 늦게 나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게 재능의 차이.
    가수 성시경씨를 예로 들고 싶은데...
    컨테스트에서 입상당시에 1집 수록곡인 '내게오는길' 들어오면
    특유의 카라멜팝콘같은 음색은 없습니다.
    약간의 가능성같은것만 느껴질 뿐이었죠.
    근데 정규1집에 수록된 '내게오는길'에는 특유의 음색이 나타나죠.
    애초에 가진게 있는 사람은 프로에게 약간의 트레이닝만으로도
    자신의 역량이 확 드러나는듯...
    전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유니크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로써 기술은 시간으로 연마할 수 있지만
    정작 자기께 없으면 예술로써 가치가 얼마나 될지...

    이런 부분에서 고민이 발생하는데...
    10년을 해도 정말로 재능이 없는경우. 심각하게 되죠.
    결국은 자신이 얼마나 즐기냐가 답이 아닐까요.
    그래야 생에서 아쉬운게 없을테니
    • xacdo 10/05/08 10:36  수정/삭제
      재능이 없어도 예술을 할 순 있죠. 남의 아이디어를 잘 가져다가 쓰면 되니까요. (피처링, 리믹싱, 리메이크 등...) 또는 다른 예술가를 도와줄 수도 있구요. (프로듀싱,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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