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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2004) - 사마귀를 레이저로 태우는 것처럼

06/09/08 14:14(년/월/일 시:분)

치직 치이익 (살 타는 냄새)
오늘은 피부과에 가서 사마귀를 레이저로 제거했다.


사마귀 2개를 없애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5분. 접수를 하고 기다린 시간이 수술한 시간보다 길 정도였다. 가격도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데도 6만원에 불과했고, 마취 주사를 놓는 따끔함을 제외하면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다. 귀 뚫는 만큼도 안 아팠다.

아니, 사마귀 제거 수술이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니! 근 몇 달을 이놈의 사마귀 때문에 머리도 제대로 못 감고 고생했는데! 진작에 할 걸! 이렇게 간단히 없어질 것을 뭐하러 고생했나 몰라.

물론 내가 사마귀를 제거하지 않고 냅둔 이유는, 언젠가는 없어질 걸 알기 때문이었다. 사마귀는 가만히만 두면 더 이상 심각해지지도 않고 영원히 가지도 않는다. 대체로 한 1년 정도만 지나면 자연히 없어진다. 자꾸만 신경쓰이다가 어느날 갑자기 보면 없어져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가끔씩, 그 1년이라는 시간이 몸서리치게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걸 안다 하지만, 도저히 기다릴수가 없다. 그래서 그 사랑의 아픈 기억을, 마치 레이저로 국소적인 부위만 태워 없애듯이 없앨 수 없을까?

요즘 의학도 발달했겠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다.

I'm fine without you -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위 질문에 대한 이 영화의 대답은 "없다"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김기덕 - 시간(2006) 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2002) 에서도, 레트로액티브(1997) 에서도, 수많은 영화들이 시간의 불가역성(unrenewable)에 대해 이야기해왔고, 이 영화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짐 캐리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 그래서 최첨단 기술로 뇌의 특정 부위에 전기 자극을 가해 기억을 지우는 치료를 받는데, 그러다보니 치료 중에 짐 캐리가 아픈 기억마저도 소중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치료 중에는 깨어날 수가 없고, 그래서 여자친구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기 위해 기억 속에서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기억 저 편으로 도망을 다닌다. 그 과정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 이 영화의 백미다.

사랑은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좋고 나쁨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노인네들이 먼 산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추억(reminisce)이랍시고 하는 거다. 추억은 노인네들의 특권이다. 삶을 살만큼 살고, 삶의 고통에 충분히 무뎌지지 않으면 추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디카를 찍을 때, 아무리 메모리가 모자라도 사진을 지우지 않는다. 흔들리고 핀트가 나가고 잘 안 나온 사진까지도 소중히 간직한다. 그러다 나중에 몇 달 있다 보면, 또는 몇 년 있다 보면, 찍을때는 몰랐는데 나중가서 되게 느낌이 좋은 사진이 있다. 시간이 지나야만 느낌이 오는 사진이 꼭 있다니까.

그때까지 하드를 포맷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기억은 사마귀가 아니니까.

http://www.xacdo.net/tt/rserver.php?mode=tb&sl=417

  • 제목: 주주클럽 - 나는나
    Tracked from 작도닷넷 06/12/10 08:28 삭제
    C Em F C 왜 내가 아는 저 많은 사람은 F Dm G G7 사랑의 과걸 잊는 걸까 C Em F C 좋았었던 일도 많았을텐데 F Dm G G7 잊으려 하는 이유는 뭘까 이유가 C Em F C 난 항상 내 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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