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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와 혁명의 말로

13/07/31 23:51(년/월/일 시:분)

설국열차를 봤다. 극장의 많은 사람들도 너무나 암울하고 허무한 결말에 벙쪄서 투덜대며 나갔고, 클리앙을 비롯한 인터넷 여론도 상당히 불만족스럽다. 내가 보기에는 영화의 완성도나 오락성을 떠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이 너무 우울하고 어둡기 때문에 싫어하는게 아닐까 싶다. 옛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봤을때만큼이나 충격적으로 허무하다. 전형적인 SF 사이버 펑크 영화다.

이 영화가 가장 우울한 지점은 진보, 혁명에 대한 허무주의 때문이다. 비슷한 관점이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도 나온다. 젊은이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주인공 장발장도 최선을 다해 돕지만, 결국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혁명은 실패한다. 사람들은 혁명을 원하지만 승산이 없어보이자 문을 잠그고 도와주지 않는다. 하지만 혁명이 실패한 후, 자기들이 돕지 않아 죽은 젊은이들을 보며 비통하게 울고 그 힘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간다.

혁명은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이득이 없다. 그들은 희생양이다. 그들이 전선의 맨 앞에 서서 온 몸으로 총알을 받아내면, 그 뒤의 사람들이 전우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진격해나간다. 그런 헌신이 없으면 세상은 정체되고 부패해간다. 이 세상을 썩지 않게 뒤섞어주고 흔들어주는 혁명의 힘이 없으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지만, 그 역할을 하는 사람 개인의 인생으로 보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 사회는 그런 손해를 담보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혁명을 일으켜서 세상을 바꿔서 남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주 실낱같은 희망이다. 희망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아주 조그만 새싹 하나다.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좌절스럽지만 건질 건 그 작고 사소한 풀뿌리 하나밖에 없다. 그 작은 것 하나를 잡기 위해 사력을 다해 온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실망하는 건 그런 지점인 것 같다. 흔히 기대하는 영화적 쾌감, 카타르시스를 주기보다는, 이 세상의 가장 우울한 구조적 모순을 투영하여 관객을 불쾌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던져주는 것이 너무나 작은 희망이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 희망이고, 정말 확실히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희망이지만, 너무나 위태롭고 갸날퍼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절망과 희망을 반반씩 섞은 불균질한 희망이다.

그래서 설령 이 영화를 보고 실망하더라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영화들이 대부분 흥행을 못하는 편이라 400억이나 들인 이 영화가 진심으로 걱정되기는 하지만, 영어로 만들었고 한국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했으니, 미국,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십시일반으로 롱테일 전략을 쓰면 그래도 손익분기점은 넘기지 않을까 싶다.

http://www.xacdo.net/tt/rserver.php?mode=tb&sl=2452

  • 이창민 13/08/01 16:06  덧글 수정/삭제
    일본만화 시나리오와 같은 맥락이군요!
  • 나그네 13/10/04 04:14  덧글 수정/삭제
    사람들은 혁명을 원하지만 승산이 없어보이자
    문을 잠그고 도와주지 않는다.
    하지만 혁명이 실패한 후,
    자기들이 돕지 않아 죽은 젊은이들을 보며 비통하게 울고
    그 힘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간다.

    비참여도 하나의 참여이다...
    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다시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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