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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KBS 도올 논어 - 39강

06/04/02 05:02(년/월/일 시:분)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
<제39강>학문의 길(2001/2/23)

http://www.kbs.co.kr/1tv/dol/

xacdo 정리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요즘 나는 상상할 수도 없이 바쁘다. 책을 쓰고 강의 준비하고 녹화하고 녹화한 내용을 PD님과 협력하여 자막넣고 편집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기적일 정도.

내가 원래 낮에 활동하고 밤을 안 새는 사람인데, 이 강의가 시작한 후로 잠자는 시간을 깎아가면서까지 초를 다투어가며 바쁘게 살고 있다. 그래서 신문을 볼 새도 없고 인터뷰도 거절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요즘 신문에서 난리라고 해서, 강의 오기 2시간 전에 모든 언론에 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다. 그런데 별 얘기가 없었다. 나는 왜 화제가 되었는지 그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내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강의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기자 여러분 고맙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주십사 하는 것이다.

최근 언론의 비판에 대해 나는 할 말이 없고, 단지 내가 왜 학문을 하게 되었는가, 내가 왜 KBS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가를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못했다. 안 했을 수도 있고 머리가 나빠서 였을수도 있고. 나는 그보다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이것에 관심이 많았어. 그래서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어찌어찌해서 고려대에 들어가긴 했지만 나는 아직도 무술을 연마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어.

그런데 고등학교때 운동의 후유증으로 온 몸에 관절염이 심하게 생겼다. 그래서 아버지 병원에서 2년을 보냈다. 그때 K1 평화봉사단이 왔는데, 그때만 해도 미국사람만 보면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고 애쓰던 시절이었다. 봉사단도 초기에는 다들 석사 박사 수준이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공부를 시키려는 의도였는지, 병상에 누워있는 2년동안 나는 그 외국 인텔리 평화봉사단 중 한명을 같은 방에 하숙을 시켰다. 그래서 나는 60년대에 외국인과 자유로운 회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 사람은 우리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우리집이 농촌에서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농악패가 오면 귀찮고 쫒아내기 바빴다. 그런데 그 미국인은 그 구차한 우리의 농악패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20대 초반에 우리 문화를 외국 인텔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런 귀중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로 여러 대학을 다녔지만 결국 내가 할일은 동양철학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서양 문물을 배워서 개화할 생각을 해야지 무슨 고리타분하게 동양철학이냐, 동양철학을 하면 넌 내 자식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동양철학에 마음을 굳혔고, 고려대학교 서양철학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중국, 일본,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 80년대에 돌아왔다.

그래서 82년도에 고려대학교 부교수로 취임했다. 그당시만 해도 동양철학은 학문으로 쳐 주지도 않았고 우리 것을 천하게 쳤다. 그래서 나는 동경대 학위, 하버드 학위하면 꺼벅 죽으니까 그것때문에 1차적으로 유학을 간 것이었다. 나는 외국이 선망의 대상이라 유학을 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에서 한자 하나하나를 따져가면서 읽는 훈련을 했고, 일본에서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배웠고, 미국에서 그들의 시각으로 한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학문은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학문은 번역이다. 이 말이 뭔 말이냐?

당시 내가 우리 고려대학교로 돌아왔을때, 유학파가 없었다. 연세대만 해도 하이 칼라라고 해서 많았는데, 고려대에서는 내가 좀 특수한 위치였다.

그때 김우창 교수님 밑에 있었는데, 참 위대한 분이다. 여러분은 내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아는데, 나도 존경하는 분이 우리나라에도 많다. 그래서 그 분이 귀국도 했으니 학지에 글을 써보라고 해서 처음 쓴 글이 "우리는 동양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였다.

우리나라의 학문은 99%가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전부 영어 독일어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어 문화권에서 언어를 빌려서 학문을 해 왔다.

그래서 20세기에 있어서 개화는 한자문화권을 한글문화권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영어문화권도 한글로 번역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번역을 우습게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사마천의 사기의 한 부분에 대해 논문을 쓰기는 쉽다. 한줄 한줄 뽑아서 짜집기하고 자기 생각 추가하고, 모르는 부분은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번역하려면, 한줄 한줄 빠짐없이 출전을 찾아서 우리말로 알기 쉽게 번역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공부하는 논어는 중국의 국학이다. 우리도 2천년간 유구하게 내려온 한글로 된 학문을 형성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왕을 중심으로 매일 단위로 기록한 역사책인데, 인류 역사상 이렇게 방대한 분량을 한 왕조에서 기록한 예는 없다. 중국 전체의 역사서를 합쳐도 조선왕조실록에 비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도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말로 번역을 해야 한다. 1960년대부터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번역을 시작했다.

태종 11년에 일본에서 코끼리를 보냈다. 이 코끼리가 언제 죽었는지 알려면 하나하나 찾아봐야 되잖아. 여러분 솔직히 궁금하세요?

그런데 내가 일본에 건너가서 역사를 뒤져보니까, 일본에서도 그 코끼리가 실은 동남아에서 처음 건너왔던 거야. 그런데 처치곤란이라서 불교국가인 한국에 준 거지.

그런데 코끼리가 하루에 콩 다섯말을 먹는다는 거야. 태종 12년에 이후라는 높은 유학자가 코끼리를 보러 갔는데, 못생겼다고 하면서 침을 뱉고 소리를 지르자, 코끼리가 밟아 죽였다. 그래서 코끼리를 귀양을 보내라고 상서가 올라온다. 그래서 장도라는 섬으로 귀양을 보낸다. 그런데 섬이라 제대로 해초밖에 못하고 매일 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 상서문이 올라오니, 이를 불쌍히 여겨 육지로 보낸다.

이제 기록은 세종으로 넘어간다. 세종 2년에 기록이 전라도에서 기르는데 이놈이 1년에 쌀 48섬, 콩 24섬을 소비하니, 감당이 어렵다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가 돌아가면서 기르게 해달라, 그래서 임금이 그럼 그렇게 해라.

세종 3년에 충청도에서 노인이 밟혀죽고 식량을 축내니 섬으로 귀양을 보내자고 다시 상서가 올라와서, 이번에는 좀 큰 섬으로 해초만 먹고 지내지 않게 하라고 한다.

이렇게 코끼리에 관련된 기록만 6번이 나온는데, 이것을 추적하려면 그 사이에 기록만 8000건이 넘는다. 이것만 논문을 쓰려고 해도 몇 년이 걸린다. 그런데 지금은 전부 번역이 되어 CD-ROM을 제작하는데 60억을 투자했다. 코끼리라고 집어넣으면 딱 튀어나온다.

그래서 우리 학문이 할 일은 한문을 한글로 번역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한문으로 된 텍스트를 한글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KBS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이것은 계몽이요 서비스에 불과하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번역이다. 이것이 쉽지가 않다.

"번역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 "철학의 사회성"에서 철학도 번역을 통해서 전개되어 왔다는 것을 밝혀왔다. 그런데 이 번역이 아주 괴롭다. 번역이 막히면 잠이 안와.

예를 들어 내가 번역을 하는데 "앞으로 걷는 것도 능하고 뒤로 걷는 것도 능하다" 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게 한문을 떠나서 뜻이 번역이 안 된다. 그래서 그 분 본가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그 분이 옆으로 걸어서 별명이 가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훈장선생님이 지나가면 아이들이 가재라고 놀리자 이런 시를 읊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분 별명이 가재라는 걸 모르면 번역이 안 되요. 내가 일본가서 뼈저리게 느낀것이, 논문보다 번역을 학자 제일로 친다. 그리고 학문은 공유되어야 한다. 나 혼자만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서 그 부분의 연구가 끝나면 전공자 비전공자의 차이가 없어진다.

지금 미국에서도 다산 정약용의 번역 등 한문의 번역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번역 기획을 해도 하는 사람이 없다. 어렵거든! 거기다가 석박사 학위를 따려고 논문에만 매진을 한다.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는 번역하고 간단한 서문만 붙여도 그 자체를 학위로 인정한다. 팔만대장경도 번역의 역사다. 우리는 학문적 역량을 번역에 80~90%를 집중해야 한다.

내가 여러분을 웃기려고 강의합니까? 언론이 나에게 뭐라고 하던, 내가 왜 여기서 강의를 하는지 아셔야돼!

여기 '도올 논어' 책도 다름이 아니라 번역이다. 내가 지금까지 번역한 책만 해도 그래.

"금강경 강해". 전 세계적으로 금강경 텍스트 중에서 우리나라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판본이 제일 뛰어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금강경을 번역할때 우리나라 판본을 참조하지 않고 중국 판본을 가져다 썼다. 그래서 내가 범어(산스크리트어)와 일일이 대조하면서 번역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에서 나는 원본과 한글을 둘 다 적고, 번역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까지 일일이 다 기록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의 번역에서 잘못된 부분이 밝혀지는 것도 쉬울 것이다. 그리고 어디서 인용했고 서양철학 칸트의 출전까지도 일일이 출처를 기록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런 저술이 지금까지 40권이 된다.

국민 여러분, 제발 저를 믿어주세요. 나는 이 강의가 끝나면 돌아가 번역할 것이다. 나는 정치할 것도 아니고 사상가도 아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세계관이 있지만 아직 말할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사상가도 아니고 철학가도 아니다. 나는 번역가요 고전 번역가. 그런 번역가가 자기가 번역한 성과물을 가지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강의하는 것이다.

옛날에 나때만 해도 대학 교수가 되면 3일동안 가둬놓고 학생들 반공정신 가지지 않게 교육을 시켰다. 지금은 안 그러겠지만. 반면 하버드는 교수가 되면 3일동안, 어떻게 유머러스하게 강의를 하는가, 강의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다 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킨다.

내가 여기서 웃기던 재미있게 하던 이것은 언어다. 일종의 말장난이다. 주자가 말하길, 책은 말을 다 담을 수 없고, 말은 그 뜻을 다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말을 통해서 뜻은 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려라.

여러분이 내 강의에서 뜻을 얻었다면, 말은 잊어버리세요. 김용옥도 잊어버려. 한국의 시청자들은 김용옥의 말을 취사선택할 권리가 있잖아.

이 세상은 이제 나를 왜곡할 수 없다. TV에서 나오는 내 모습이 진실이다. 내가 여기서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날 테니까. 그리고 나는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성숙하기 위해 강의를 했고, 비판을 해도 어떤 제도나 사상에 대해 비판했지 개인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나의 강의는 어떤 부정적인 결과도 주지 않는다.

나는 강의를 재미있게 하지만, 여러분은 이 강의를 재미로 들으면 안 된다. 그 뜻 의미를 들어야 한다.


ps.
-내가 굳이 도올의 강의를 기록하는 것은, 나중에 필요한 지식이 있을때 간편하게 검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강의를 듣는데는 1시간이 걸리지만, 정리한 걸 다시 보는데는 5분이면 충분하고, 검색하는데는 1초도 안 걸린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말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다고 했다.
-나도 요즘 저널 번역을 하는데, A4 한장 번역하는데 2시간씩 걸린다. 6페이지 번역하는데 3일씩 걸린다. 정말 미쳐버릴 정도로 힘들고 괴롭다.
-번역이 그렇다면, 경영에서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 맥도날드가 불고기버거를 만든다던가 하는 것)도 일종의 번역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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