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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들 - 스토리

버터 랜드 스토리

06/11/26 12:56(년/월/일 시:분)

부드럽고 향기롭지만
토할 것 같아

인기 여가수였던 크림 소다는 에이즈에 걸렸다. 사랑하던 남자에게서 옮은 것이다. 홧김에 크림 소다는 사랑하던 남자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다행히도 에이즈는 그 자체로는 죽지 않는 병이다. 그래서 크림 소다는 온 몸을 완전히 소독하고, 감염을 완전히 방지하는 무균실 안에서 생활했다. 이렇게 하면 에이즈에 걸리고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단 매달 엄청난 유지비를 부담해야 했다. 물론 크림 소다는 인기 가수였기 때문에 충분한 돈이 있었다.

완전히 깨끗하게 차단된 유리 감옥. 그 안에서 크림 소다는 단지 죽지 않기 위해서 매달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갇혀 있어야 했다. 마치 실험실의 무균 돼지처럼. 쓸데없이 살아있다는 느낌.

크림 소다는 그 안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극찬을 받은 전설의 앨범, "버터 랜드 스토리"다.


1. 버터 랜드 스토리

버터 랜드
버터로 만들어진 세계

모든 것이 부드럽고 향기롭고 기름진
완전무결한 세계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행복하고
죽지 않는, 그래서

완전 무결한 세계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

그래서, 꿈꿀 수 없는
닫힌 세계

나는 그 곳에서 사랑을 했네
사랑을 했었지
사랑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토할 것 같아

부드럽고 향기롭지만 토할 것 같은
버터로 가득한

이 곳은
버터 랜드



2. 빵, 죽어라

죽음은 무엇일까
죽는다는 건 어떨까

난 잘 모르겠어
죽어본 적이 없으니까

너라면 알겠지
죽어본 적이 있으니까

기분이 어때?
편안하니?
나른하니?
괜찮니?

괜찮다면 나도 그려러고.

빵, 죽어라
빵, 죽어라
빵, 죽어라
빵야 빵야 빵 빵 빵

총이란 건 말이야
비슷한 거 같아

매끈하고 차가운 재질에
나의 작은 손가락 가만히 당기면

매우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이 튀어나와
나의 정 중앙에 정확히 명중하면
어떤 진물이 나와 흐르잖아

그 부드럽고 향기롭지만 토할 것 같은
어떤 진물이

마치 버터처럼
나와 흐르잖아

빵, 죽어라
빵, 죽어라
빵, 죽어라
빵야 빵야 빵 빵 빵

죽어 죽어 죽어
죽어버려

토할 것 같아



3. 무균실

유리 너머로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나는 괜찮아
비록 이 안은 혼자지만

이 안에는
나를 상처주는 사람도 없고
나를 죽일 사람도 없고
사랑할 사람도 없으니까

키스해줄께
이리와

유리 너머로
작은 입술 갖다대면

너무 두꺼워서
체온조차도 전달되지 않는

가상의
키스

상처를 주지도 않고
감염을 시키지도 않고
사랑도 없는

가상의
키스

완전 무결한
완벽한

그래서, 토할 것 같은

가상의
키스



4. 죽음에 이르는 병

에이즈
에이즈
에이 아이 디 에스

랄랄랄라 에이즈

신나는 에이즈
행복한 에이즈
너와 나의 에이즈
함께 나눠요

문을 열고
들어와

나눠줄께

어서
빨리
제발
그냥

들어와
나눠줄께

에이즈
에이즈
에이 아이 디 에스

사랑의 에이즈
죽음의 에이즈
너와 나의 에이즈
함께 나눠요



5. 촉각

어떤 날은 사람이 그리워서
하루 종일 TV 너머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어떤 날은 사람이 그리워서
하루 종일 인터넷 너머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럼 마치 내가 혼자가 아닌 것 같아
그런 잠시의 착각

하지만 내가 필요한 건
사람의 촉각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오감 중에서
내가 필요한 건

촉각

사람의 온기
사람의 피부
사람의 마찰
사람의 통증

촉각

TV로는
인터넷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음악으로는
목소리로는
전달되지 않는

기억으로는
추억으로는
느낄 수 없는

바램만으로는
이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촉각

어떤 날은 사람이 그리워
단순히 어떤 대상으로서의 사람이 그리워

온기가 그리워
피부가 그리워
마찰이 그리워
통증이 그리워

촉각



6. 염산날부핀

요즘에 난
미쳐버릴 것 같애

요즘에 난
죽어버릴 것 같애

염산날부핀 주사를 내게 줘
좀 더 마비될 수 있도록

좀 더 무뎌져갈 수 있도록

살아있어 여기서
죽어가기 위해서
고통받기 위해서

요즘에 난
죽어버릴 것 같애

살아있어
죽어가기 위해서

살아있어



7. 프로작

나의 대뇌의 행복 중추에는
정조대가 채워져 있어

나 스스로 열쇠를 채우고 잠궈버린
행복의 블랙박스

하지만 괜찮아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으니까

마치
오르가즘이 없이도 섹스는 할 수 있는 것처럼

애초에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잖아
행복하지 않아도

뭐 어때
상관없잖아

괜찮아
프로작이 있으니까

뭐 어때
상관없잖아

무슨 상관이야
냅 둬

행복하기 싫으니까

나의 대뇌의 행복 중추에는
정조대가 채워져 있어

이젠 열어줄 사람도 없고
더 이상 행복하기도 싫으니까

뭐 어때
상관없잖아

행복하지 않은 삶도
나는 상관없다고

나의 대뇌에 되뇌이게 돼



8. 모래 인형

너는 흙으로 만은 인형
나는 모래로 만든 인형

너는
약간의 습기만 있으면
숨을 불어넣으면
부서지지 않고 단단하게 구워지지

하지만 나는
물에 적셔도
숨을 불어넣어도
산산히 부서지고 뭉쳐지지 않아

나는 어딘가 머무르고 싶었고
뭉쳐지고 싶었어

너처럼
어떤 모양을
어떤 형태를
가지고 싶었어

그래서
흙으로 빚은 너라는 그릇에 담기고 싶었어

하지만
그릇이 너무 작았던 탓일까
깨져버리고
산산조각이 나고

나는 또 갈 곳이 없어졌어

큰 그릇에 담겨도
작은 그릇에 담겨도

나는 언제나
그릇에 넘치고
그릇을 깨트릴 뿐

흙과 모래는 애초에 섞일 수 없는 것일까

그래서 강물에 흘러흘러
떠돌아 다니며

부딪치고
상처받고
부서지고

슬픈 일을 많이 겪었어
그래서 마침내 바닷가로 밀려와 버렸어

모래 사장에서
다른 모래 인형을 만나
나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줬지

나는 어떤 그릇에도 담기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릇을 깨트리기도 하고
강물의 모진 흐름 속에 수없이 상처를 입고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그러자 얘기하네
이거봐

이렇게 고운 모래가 되었잖아

그렇게 세상에 닳고 달아서
이렇게 새햐앟고 고운 모래가 되었잖아

이렇게
고운 모래가 되었잖아

산산히
둥글게
부서진
고운 모래가 되었잖아

http://www.xacdo.net/tt/rserver.php?mode=tb&sl=549

  • 제목: 오늘은 세계 에이즈의 날
    Tracked from 작도닷넷 06/12/01 15:58 삭제
    나도 마침 며칠 전에 에이즈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썼는데. http://xacdo.net/tt/index.php?pl=549 버터 랜드 스토리 이 소설의 포인트는 "사랑하는 사람한테 에이즈가 옮았다"는 ..
  • HIV 06/11/26 15:47  덧글 수정/삭제
    멋지군요. 하지만 몸안의 바이러스와 균에 의해 죽게 되지 않을까요?
    • xacdo 06/11/27 04:04  수정/삭제
      음 그러네요. 그러면 소설이 말이 안 되는데..
      살균제와 면역증강제를 항상 복용한다는 설정을 추가하면 되겠죠? 구토는 그것 때문인 것으로 하고.
  • 크리 06/11/29 14:12  덧글 수정/삭제
    슬픈 얘긴데 왜 웃음이..
    그건 그렇고 버터랜드라니, 가보고 싶군요
  • cancel 06/11/29 16:25  덧글 수정/삭제
    http://youtube.com/watch?v=MY9QTKaNUzs

    물론 본문과 관련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xacdo 06/11/29 23:10  수정/삭제
      아무것도 아닌 영상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수법은
      곤충스님 윤키 - 느린 서울 (가족 야유회 홈비디오)
      요시노리 수나하라 - Love Beat (비행기 소개 비디오)
      와 비슷하군요.

      http://youtube.com/watch?v=WFUvGye5JnA
      Yoshinori Sunahara - Love Beat

      ps. 링크를 길게하니 사이드바 레이아웃이 깨지네..
  • cancel 06/11/30 03:35  덧글 수정/삭제
    다만 이건 아마추어가 만들었다는 점이 다르겠죠.
    근데 곤충소년 윤키 비디오도 보고 싶군요.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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